아는 것이 병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현장소장을 하는 대학 선배로부터 십 수년 만에 연락이 왔습니다.
철근콘크리트공종 협력업체가 보 주근을 한 두개 부족하게 배근 했는데, 자신의 소견으로는 크게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수 십년 전 대학시절 철근콘크리트구조 수업의 내용을 거론하면서 허용응력설계법 안전계수를 감안하더라도 실제 구조계산된 부재응력에 여유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안전하다는 건축구조기술사의 소견으로 구조의견서를 작성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이미 실수로 구조도면과 다르게 설치된 보 철근 뿐만 아니라 그 위에 배근 완료된 슬래브 철근까지 드러내고 다시 배근하면 준공기한을 맞출 수 없으므로 난처한 상황이다. 물론 구조의견서 비용은 원하는 대로 처리해주겠다는 말도 곁들였습니다.
시공현장의 관리수준이 상당히 높아졌지만, 아직도 이렇게 어처구니 없는 협조요청 전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시공자 입장에서는 건축구조기술사의 구조의견을 감리자에게 제출하고 승낙 받으면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겠지만, 이런 경우에는 원래 구조설계를 담당한 건축구조기술사에게 요청하여 안전여부를 확인하여야 합니다. 물론 원래의 구조설계자에게 재시공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받은 후에 미련을 못 떨쳐버리고 저처럼 원래 구조설계에 참여하지 않은 건축구조기술사에게까지 연락을 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구조요소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변경이 있는 경우에 그 내용은 원래 구조설계를 담당한 건축구조기술사에게 변경검토를 받아야 합니다. 건축허가시 제출된 「구조안전 및 내진설계확인서」 속칭 '안전확인서'는 구조설계자가 계산한 대로 시공되는 경우에 전체 구조시스템에 대한 안전을 확인하는 서류로서 유효성을 가집니다. 그런데 그 중 변경되는 일부에 대하여 제3자인 다른 건축구조기술사가가 안전하다는 의견을 낸다고 하더라도, 이는 전체 구조시스템의 안전을 확인한 것이 아니므로 기 제출된 「구조안전 및 내진설계확인서」의 효력에 문제가 생깁니다. ■ ■ ■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 호가 발사 직후 폭발한 사건에 대해 유일하게 과학자 신분으로 조사위원회에 참여한 리차드 파인만(1965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 남긴 보고서에는 고체연료 로켓 O링의 부식에 대해서 '부식이 더 깊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을 마땅히 염려해야 하는데도, 그들은 그런 가능성을 염려하지 않고 '안전계수가 3'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것은 공학용어인 '안전계수 Safety Factor'를 아주 이상하게 사용한 것입니다. 영구적 변형이나 균열, 파손 없이 일정한 값의 하중을 견딜 수 있도록 교량을 세울 때면 대체로 전체 하중의 세 배를 견딜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이 '안전계수'는 초과 하중 또는 미지의 초과 하중을 견디거나, 예상치 못한 재료의 결함에 대비한 것입니다.'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예상치 못한'과 '설계도면과 다르게'는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는 1597년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책 「성스러운 명상. 이단의 론에 대해」(Meditationes Sacræ. De Hæresibus)에서 'Scientia potentia est' (지식 그 자체가 힘이다)라는 글로 남겼고, 1620년의 책 「신기관(新機關)」(Novum Organum Scientiarum)에서 Scientia et potentia humana in idem coincidunt, quia ignoratio causae destituit effectum' (인간의 지식과 힘은 일치한다. 왜냐하면 원인을 모르면 결과도 이끌 수 없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설명했습니다.
아는 게 병이다.
'아는 것이 병이다'는 우리의 속담은 어떤 불편한 사실을 차라리 모르는 편이 나을 때를 이르는 상황에서 사용하는 말이며, 중국에서는 「삼국지」에서 유래한 사자성어 '식자우환(識字憂患, 글자를 알면 오히려 근심이 된다)'와도 비슷합니다. 소동파의 시에도 '人生識字憂患始' (인생은 글자를 알 때부터 우환이 시작된다)이라는 말이 있으며, 너무 많이 알아서 쓸데없는 근심도 그만큼 많이 하게 되는 것, 또는 어설픈 지식 때문에 일을 망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우리는 '아는 것이 힘이다'와 '아는 것이 병이다'가 서로 대척되는 말인 것처럼 언뜻 착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하면 실제 같은 말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즉 '어떤 지식이든 제대로 알면 크게 도움이 되고, 어설프게 대충 아는 것으로 만족한다면 곤욕을 당할 것이므로 차라리 모르는 것보다 못하다'는 것입니다.
대충 아는 것은 모르는 것입니다.
어설피 알고서 다 아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처럼 안타깝고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한 개만 알 때는 세상을 다 아는 것처럼 착각하지만, 백 개를 알면 세상의 백분의 일, 만분의 일은 고사하고 쥐뿔 만큼도 모른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공부를 하면 할 수록 배워야 할 세상의 크기가 마치 광속으로 커져만 가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래도 배우고자 하는 자세와 노력만이 스스로를 자만이라는 병에서 벗어나게 하고, 효용있는 힘을 갖게 만든다고 믿습니다.